내가 한시를 읊는 이유는 옛날의 사람과 대화하기 위함이다. 언제나 나는 미래에서 과거로 편지를 보내듯이 노래를 짓는다. 오랫된 벗을 위해 그들이 알아볼 수 있는 말, 완전히 동일하지 않아도 가까운 말로 스스로의 뜻을 전해주는 것이다. 실제로 한시와 한문은 그렇게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잇고 있었다. 그 유대를 다시 부흥시키는 것이 내 꿈이다. 이슬람권의 아랍어, 유럽의 라틴어도 한문과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. 하지만 거기서 태어난 뛰어난 문학은 지금 주목하는 자가 적다. 일상에서 쓰는 언어가 중요해진 지 오랫된 언어가 사람들에서 멀어진 탓이다. 이건 이상에 불과하는데, 우리 모두가 고전과 고전의 언어에 관심을 다니게 해야 한다. 번역보다 원문을 읽는 것이 더 낫고, 오랫된 말을 배우면 즉 옛날의 역사를 배울 수가 있으니까. 우리가 일찍부터 쓰는 표현에도 자주 놀라운 유래가 자 있는 것이다. 그걸 발견했을 때, 나는 멀리먼 과거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분명히 느낀다. 그것을 알아채게 해주는 한시는 현대, 과거, 미래를 하나로 만드는 우수한 표현방법이다. |